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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함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꼽는 데 이견을 달 이는 별로 없을 테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자영농 빠홈은 농부에게 충분한 땅만 있다면 두려울 것 없다는 신조의 소유자다. 악마는 빠홈을 타락시키고자 다짐하고 그에게 거듭 땅을 차지할 기회를 제공한다. 농부의 땅은 점점 늘어나지만, 한번 시작된 욕망은 갈증처럼 빠홈을 괴롭힌다.
마침내 자신의 노력으로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소유하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무리한 나머지 땅을 갖는 순간 빠홈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만다. 결과적으로 그가 차지한 땅은 자신의 키에 맞춘 묫자리에 불과했다. 이 이야기는 현대에도 부질 없는 욕심 펀드 주식 에 대한 경계와 함께 아무리 부유하고 막강해도 결국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는 교훈을 전한다.
대문호가 이미 몇 세기 전에 통렬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한한 존재는 죽음을 맞게 마련이다. 그렇게 세상은 끝과 시작이 교차하며 순환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그 만고의 진리를 망각하고 헛된 집착에 빠지곤 한다. 극단화 주택대출 갈아타기 된 부의 편중은 양극화로 이어지고 삶의 수준 격차를 과도하게 벌린다. 많이 가진 자는 죽음이 두려워 천문학적 의료비용과 건강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가난한 자는 가장 두려워하는 노후, '오래 아픈 삶'을 감내해야 한다. 결국은 어느 쪽이나 필연적으로 다가올 죽음을 대비하지 않은 채다.
타인의 최후를 정리하는 사람
삼성생명 전세자금대출 화 <숨> 속 장례지도사는 청소년 시절 자신의 할머니가 임종을 맞았을 때, 집안 어른들이 손주들도 염을 할 때 참여해야지 하며 형제들을 불렀는데 다 겁이 난 나머지 도망가 버리는 바람에 어쩌다 처음으로 참여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이후 평생을 타인의 시신 염습과 함께 보낸 나이든 장례지도사에게선 '장인'의 품위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시신을 수습해 마지막 길 박은영 을 보내는 책무에 소명을 느끼며 장인은 본인이 경험한 수십 년 동안의 깨달음을 카메라 앞에 서술한다. 가진 게 많은 터라 이승에 미련이 남은 이는 유독 염이 힘들었다며, 마지막 안간힘을 쥐어짜며 죽음을 회피하고자 웅크리고 오그라든 육신과 표정을 곧게 펴는 게 무척 힘들었다고 술회한다.
화면이 바뀌면, 한눈에 봐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노인 주택청약통장소득공제 이 등장한다. 비좁은 단칸방에 기거하며 고단한 몸 쉴 틈 없이 살기 위해 끼니를 때우고 종일 골목을 누비며 폐지를 수거하는 일상이다. 그렇게 수고해도 몇천 원 벌이가 쉽지 않다. 전기세나 가스요금 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빌붙거나 타인을 원망하지 않으며 근근이 하루하루 살아간다. 한때 사업이 번창했으나 쇠락한 후 지금의 신세로 전락했다. 고령에 과중한 노동으로 퇴행성 관절염을 얻었음에도 일을 멈출 수 없다. 노인은 넝마주이로 영락한 신세를 한탄할 법도 한데, 담담하게 자신의 현실을 토로하고 죽음이 그리 멀지 않음을 예감한다. 어떻게 맞이할 지가 관심사다.
굳게 잠긴 원룸 문을 열고 몇 명의 사람이 장비를 잔뜩 갖춘 채 진입한다. 사후 몇 달이 지난 고독사 현장을 수습하러 온 유품정리사 일행이다. 말보다 실상을 보여줌이 우선이라는 듯, 일행이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고 천천히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부터 관객은 관찰하게 된다. 마지막 육신의 흔적은 삶에 대한 집착만큼 거주지에 잔해를 남겨놓았다. 유품정리사는 그들의 흔적을 정리하고 가족이 힘들어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 가족이 할 일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웃들은 타인의 죽음을 가까이하기 꺼린다. 직업적 고충이 만만할 리 없지만, 누군가의 마지막 미련에 종막을 고해야 새로운 이들이 공간을 채울 수 있다.
장례지도사의 아내는 업무적으로는 협력자가 된다. 부부는 함께 자신들의 직무를 점검하고, 매일 맞이하는 타인의 죽음을 목격하며 자신들의 죽음을 예비한다. 어떤 모습과 조건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단식을 배워 한날한시에 부부가 함께 죽음을 맞이하면 어떨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스위스 존엄사 방법을 택하는 건 유용할까. 확실히 평범하지 않은 업을 가진 이들의 대화는 비범하다. 그들이 현장에서 체험한 것처럼 해가 지날수록 무연고 사망이 급증하는 중이다. 이들은 대안 토론회에도 참석하고, 피부로 느낀 제도 모순도 해설한다. 사회 전체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너무나 부족하다며.
극한의 삶을 담던 감독이 죽음을 탐구하는 까닭
<숨>은 윤재호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은 프랑스 영화학교 유학 시절 우연히 파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탈북 동포를 만났다고 한다. 이 기이한 인연은 장기간 계속된다.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외로운 타향살이에 지친 감독에게 이 중년여성은 때로는 가족과 같은 존재로 다가설 수밖에 없었을 게 분명하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다른 조건, 그런데도 어찌 보면 너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탈북민들에 관심을 지니게 된 감독은 일련의 작품을 이어간다.
< 마담 B >는 고난의 행군 시절 오직 살아남기 위해 탈북한 후 10여 년 넘게 중국에서 떠돌다 한국으로 마침내 들어온 여성의 기구함이란 단어만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삶을 담았다. 북한에서 가정을 이뤘던 그는 의지할 곳 없는 대륙에서 오직 살기 위해 중국인 농부와 결혼했었다. 그렇게 두 명의 남편, 두 개의 가정을 원치 않게 가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정착하지만, 지난 세월의 흔적에 직면한다.
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은 다큐멘터리에 이어 극영화로 이어진다.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화제를 모았던 배우 이나영 주연작 <뷰티풀 데이즈>다. 두 편의 같은 배경 다른 영화는 나란히 2018년 11월 극장 개봉을 맞이했다. (이외에도 북한 동포 소재의 단편이 해당 연작 전후로 여럿 더 있다)
감독은 차기작으로 탈북 여성복서의 실화를 각색한 <파이터>를 내놓는다. 정치적,이념적 갈등과 무관하게 한 인간이 감당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고단한 삶을 조명하는 데 주력하던 감독이 좀 더 미래지향적이자 불굴의 인간 의지를 그리는 방향으로 초점을 이행하는 게 확연히 느껴지는 작업이다.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내지르는 주먹, 얻어맞고 주저앉아도 끝내 일어서는 투혼이 확연히 다른 맛으로 다가왔다.
탈북민 전문처럼 인식되던 감독의 다음 작업은 뜻밖의 것이었다. '국민 MC' 故 송해 전기영화 < 송해 1927 >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한국 사회의 한 상징이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친숙한 주인공의 드러나지 않은 이면을 보여줌은 물론, 단순한 영상 전기에 그치지 않고 실향민 출신 망향의 고통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아들의 이른 죽음에 좌절하던 부성애를 그려낸, 그야말로 마지막 작별인사 같은 작업으로 남았다. 그렇게 죽음과 삶, 극한의 인생과 달관의 지혜를 한군데 아우르는 영화적 작업의 이행이 본작 <숨>에서 본격적으로 죽음을 조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고령화 대한민국에서 일상 곁에 성큼 다가온 죽음
영화는 그런 감독의 작품세계 궤적 안에서 묵직한 분기점에 닿았지만, 거창하고 현학적인 분석이나 과장된 극적 효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주요 등장인물 중 일부는 그 인생 역정을 알게 되면 깜짝 놀랄만한 경력을 지녔지만, 영화 내에서 그런 배경은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장치로 욕심낼 법도 한데, 감독은 그런 호기심 유발에는 전혀 동할 기색이 없다. 죽음을 맞이하는 경건한 인물들의 자세를 본받기라도 하려는 듯, 영화는 시종일관 오직 한국 사회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야 할 과제를 형상화하는 데 총력을 집중한다.
그런 결기 덕분에 영화는 묵직하면서도 담백한 기운을 시종일관 이어간다. 장례지도사와 유품정리사 분야의 베테랑이 진술하는 우리 곁의 죽음이 갖는 형태와 의미는 차분하게 귀에 꽂히고, 선정적이지 않되 봐야 할 건 빼먹지 않고 보여주는 카메라는 대개 공포와 혐오로 기울기 쉬운 죽음의 존재감이 관객의 지근거리로 근접하도록 본분을 다한다. 염을 하는 현장에 당연히 있을 시신, 사건 현장 피해자 표식처럼 드러난 보기 불편한 육체의 흔적, 화장을 마친 뼛가루 속 유골 잔해가 남김없이 등장한다. 마치 우리가 애써 외면하던 죽음을 이제는 일상 속에서 조명해야 한다고 소리 없이 웅변하는 것만 같다.
정책 대안을 소리 높여 주장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의도는 명확하다. 개별 삶의 숫자만큼 죽음이 따라붙게 마련인데, 5천만 한국인의 삶은 곧바로 5천만 개의 죽음을 위한 사회적 대책을 요구하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의 강조다. 1인 가정이 늘고 전통적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는 현상이 이미 멈출 수 없는 가속화 페달을 밟는 도상에서 필연적인 질문이다. 그와 함께 각각의 개별적 죽음을 받아들일 대비 또한 관객 각자가 영화를 보고 나면 떠올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질문지가 된다.
죽음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의 양극화, 노인 빈곤 심화는 개인의 마음가짐을 초월해 각각의 형편에 따라 죽음을 대비할 방법조차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버린다. 국가의 형식적 제도지원 외엔 종교에 귀의해 내세를 기원하는 정도만 허용된 빈곤하고 외로운 노인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책임질지 숙제는 비록 <숨>에서 소리 높여 외치진 않더라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측은지심 당연지사로 가슴에 품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지, 그 엄중한 과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조할 것인지 지금 출발해야 재앙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겠다.
그렇게 심심한 것 같이 훌쩍 흘러가는 영화는 공적 과제와 개인적 성찰을 동시에 아우르며 끝나지 않을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관객은 각자 영화를 통해 목격한 '죽음에 관한 한 연구'를 시작하게 될 테다. 거대한 고래가 죽으면 심해로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해양 생태계에 양분을 골고루 전하는 마지막 임무를 지구 환경의 순환을 위해 수행한다는 이야길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접하곤 한다. 인간의 죽음도 이젠 그런 선순환을 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작품정보>
숨Breath2023|한국|빅퀘스천 다큐멘터리2025.03.12. 개봉|72분|12세 관람가감독/각본 윤재호출연 유재철, 김새별, 문인산제작 빈스로드 픽쳐스, 시네마로드배급 ㈜인디스토리